주제

SIWF 서울국제작가축제

2023 서울국제작가축제

언어의 다리를 건너

  • 일시2023.09.08.(금) ~ 2023.09.13.(수)
  • 장소서울(노들섬)
  • 기획위원강화길, 백지연, 황인찬, 황종연

우리는 언어의 다리를 건너 세상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언어를 배우면서 우리는 태초의 어둠으로부터 빠져나와
가족, 친구, 이웃들이 살아가는 세상의 빛 속으로 건너왔습니다.
언어를 배운 덕분에 우리는 나르키소스의 연못가에서 떨어져나와
우리 공동체들의 규범과 가치, 기억과 지식을 얻었고, 그리하여 인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언어의 다리를 건너 우리가 들어온 세상은 하나가 아닙니다.
우리의 모국어는 인류가 스스로를 표현하는 다수의 언어 중 하나에 불과하며
모국어에 의해 전수된 문화는 그 언어만큼 다수인 문화 중의 하나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언어 안에서 편안하지만 우둔하고, 유식하지만 아집이 많습니다.
우리의 언어 덕분에 우리가 획득한 인간성은 바로 그 언어에 의해 제한되어 있습니다.
언어의 다리를 건너 세상 안으로 들어온 우리는
언어의 다리를 건너 세상 밖으로 나가려 합니다.

아시다시피 문학은 이상한 언어입니다.
언어의 법칙에 숙달된 언어이면서 언어의 법칙을 위반하는 언어입니다.
문화의 목적에 봉사하는 언어이면서 문화에 저항하는 언어입니다.
제한하는 문화를 극복하기 위해,
편협한 인간성을 초월하기 위해 우리는 문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동아시아 문학과 철학의 어떤 전통은 진리에 대한 이름은 진리가 아니라고 가르치고,
말의 길이 끊어진 자리에 실재가 있다고 일깨웁니다.

이것은 우리 각자 언어적, 문화적 한계를 넘어 사유하라는 제안과 같습니다.
서울국제작가축제가 그 한계를 만나는 동시에 그 한계 너머를 엿보는 기회가 되기 바랍니다.